아빠가 피운 담배연기 태아 건강까지 해친다
임신 16주의 김순희(30·가명)씨는 지난 4월말 자신과 태아의 체내 일산화탄소(CO) 농도를 측정하곤 깜짝 놀랐다. 자신의 폐포 속 CO 농도가 7ppm(1.12%COHb), 태아의 혈중 CO 농도는 2.19 %COHb로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 자신은 '경증 흡연자(Light Smoker)', 뱃속 아기는 '매우 위험 영역(High Risk Zone)'에 해당되는 수치였던 것. 김씨는 담배를 피운 경험이 한번도 없었다. 하루 30개피 이상 담배를 피우는 남편에 의한 간접흡연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씨는 "남편이 사업 스트레스 때문에 집안이나 베란다, 복도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기회에 남편에게 강력하게 금연을 권유하겠다"고 했다.
김씨가 CO 농도를 측정한 곳은 서울 은평구 보건소. 이곳은 올해 4월부터 지역내 임산부 및 태아의 혈중 CO 농도를 무료로 측정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간접흡연의 폐해를 잘 깨닫지 못하는 임산부와 배우자, 가족들에게 그 심각성을 직접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다. 관내 산부인과의원 2곳도 동참하고 있다. 서울 지역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시도하는 '간접흡연 제로' 캠페인의 일환이다. '뱃속 아기가 담배 연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가 캐치프레이즈다.
보건소는 이를 위해 300만원을 들여 '호기(呼氣) CO 측정기' 3대를 구입했다. 일명 '연탄가스'로 불리는 일산화탄소는 흡연 때 나오는 무색무취한 유해 가스다. 인체 내 폐포(포도송이 모양 작은 공기 주머니)에 가장 쉽게 빨리 흡수되며, 혈액 중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과도 쉽게 결합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흡연 여부 및 농도 측정 때 표준으로 이용된다. 호기 CO 측정기는 임산부가 입에 물고 숨을 크게 내 쉬면 폐포에 축적된 일산화탄소 농도를 'ppm(100만분의 1)' 단위로 화면에 나타내 주며 동시에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일산화탄소 농도를 '%COHb(카복시헤모글로빈)'로 환산해 보여준다. 이와 함께 뱃속 태아의 일산화탄소 농도까지 표시해 주는 것이 특징.
은평보건소 금연상담 담당 현순필씨는 "지금까지 110명의 임산부와 태아의 CO 측정이 이뤄졌는데, 68.2%(75명)에서 남편이 현재 흡연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공공장소 등에서 간접흡연에 노출 됐을 수도 있지만 임산부는 배우자나 가족 등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간접흡연의 해악성은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임신한 여성, 어린이, 영·유아가 가장 큰 피해 대상이다. 특히 뱃속 태아는 호흡기 질환이 있거나 행동 발달 장애아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엔 '3차 간접흡연(third-hand smoke)'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간접흡연은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내뿜는 담배 연기를 흡입하는 것을 말한다.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명승권 박사는 "3차 흡연은 담배가 꺼진 후 남아있는 담배 연기로 인한 오염을 의미한다. 즉 흡연 후 주변의 카펫, 소파, 의류, 머리카락, 신체 등에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잔류해 있는 독성 물질도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보스톤 다나-파머/하버드암센터의 조나단 위니코프 박사는 2009년 1월 의학 전문지 '소아 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이들을 간접흡연에 노출하지 않기 위해 아이가 없을 때 집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베란다, 집 밖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이들은 3차 간접흡연을 통해 독성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어떤 장소에서든 흡연을 하면 담배에서 나오는 독성 미립자들이 머리카락이나 옷 등에 스며들고, 나중에 아이와 접촉할 때나 모유 등을 통해 아기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 4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연구에서는 실내에 남아있는 담배 연기 잔유물이 공기 중의 아질산(HONO)과 반응해 발암성 물질인 '니트로스아민'을 생성함으로써 잠재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고했다.
간접흡연 뿐 아니라 3차 간접흡연 피해를 막으려면 담배를 끊는 수밖에 없다. 인제의대 서울백병원 금연클리닉 김철환 교수는 "금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집에 들어올 때 옷과 머리카락 등을 3분 이상 잘 털고, 집에 와서는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후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